[] “법률가로서의 양심과 사회정의를 향한 마음 잃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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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3-2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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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 인터뷰

Q 안녕하십니까, 변호사님.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 여러분, 이종엽 변호사입니다. 저는 제19대 인천지방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 총회 부의장을 지낸 뒤, 2021년 제51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퇴임 이후에는 제15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약 1년 2개월가량 재임하다 지난해 12월 사퇴하였습니다. 지금은 서초동에 소재한 법무법인 진수에서 고문변호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을사년(乙巳年) 새해에는 회보 구독자 여러분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 여러분께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Q 변호사님께서는 오랜 기간 변호사로 활약해 오셨는데요, 변호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무엇보다 법률가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갖추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로서의 기본적 양심이란, 사회정의를 향한 희구(希求)와 보편적 인권의식을 지칭합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연민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두 번째로는 균형적 사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어느 한 방향으로 매몰되지 않고 너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편향적인 사고로 세상을 넓게 보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변호사는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나 의뢰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균형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조인은 어떤 경우에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Q 2021~2023년 제51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을 역임하시며 재야 변호사업계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셨습니다. 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이른바 ‘검수완박’이라 불리는 검 · 경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하여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견지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입법이 추진되었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 구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실제로 경찰의 업무 부담 가중 및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 약화로 일선 형사절차 현장에서 수사가 지연되고, 마약 및 각종 카르텔 범죄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변협에서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를 기획하여 진행하였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제가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했던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견지할 수 없는 분들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해 파장을 일으켰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법률플랫폼에 대하여 엄정한 대응조치를 취했던 일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당시 변칙적인 플랫폼 업체들이 법률시장에 진출해 변호사들에 대한 별점 평가나 검증되지 않은 형량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노정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변호사업계의 건전한 수임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에 대한 규제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전개돼 고군분투하기도 했지만, 집행부의 결연한 의지에 대다수의 회원분이 공감하는 등 힘을 보태주셔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Q 변호사단체의 수장으로 지내는 동안 어떤 순간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협회장으로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는 집행부 참모들의 견해를 포함해 각계의 시각과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그럼에도 최종적으로는 단체장인 제가 마지막 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내면적으로 깊은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특히 변호사 직역의 이익을 수호하거나 대변할 때마다 언론이나 국회 등 외부에서는 비판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저의 결정이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굳은 심지를 유지하며 상황을 돌파하려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측면들이 제가 겪은 어려움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현재의 변호사업계에 대한 진단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모두가 인정하듯이 법조 대중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매년 수많은 변호사가 법률시장에 배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변호사들은 자신만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특화된 분야를 개발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법조인 과잉배출 등의 여파로 법률시장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키워드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잠재적 의뢰인을 싹쓸이하는 경영기법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이윤만을 추구하는 듯한 기업적 형태의 사건 수임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법률서비스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쉽지 않은 일반인들이 상업적으로 변질한 변호사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법률시장이 혼탁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건 당사자들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매 사건 성심성의를 다하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법률가적 양심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변호사의 모습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물론 경제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양상이 법률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적절한 가이드라인과 제어 장치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이른바 ‘네트워크 로펌’에 대한 규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빚어진 논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법률시장에서 인공지능(AI)의 역할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하지만 AI 기술이 오남용되어 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법률가적 양심과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입장에서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집행부에서 이러한 점을 주의 깊게 살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도 재직을 하셨습니다. 공직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하셨는지 궁금힙니다.
우선 공직에 들어가면서 “공정하고 청렴하게 업무를 수행하겠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장 업무를 마치는 날까지 제 양심을 걸고 이러한 원칙을 성공적으로 지켰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최근에는 공공기관의 개혁과 관련한 화두가 자주 입길에 오르내립니다.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공공기관은 대략 300곳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관의 규모에 따라 인원과 예산이 각기 다릅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공공기관에 할당되는 예산은 상당한 규모입니다.
현재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영 혁신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예산의 운영 측면에 있어서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적극 유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효율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선진국의 기준에 미달하는 영역이 남아있습니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운영되는 만큼, 구성원 모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산의 적정하고 효율적인 배분을 놓고 경영진과 노조, 노조와 정부 사이에 여러 이해관계와 갈등이 상존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거칠 수밖에 없지만, 조직의 성과나 생산능력을 무시하고 단순히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관성대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직 혁신을 위해서는 소속 직원들도 어느 정도 양보와 타협을 통해 경영 효율화 정책에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공기관의 혁신을 위해 단순히 “고통을 감수하라”는 방식의 일방적인 정책을 밀고 나갈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협상을 하고, 점진적 개선을 위한 대화와 절충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에는 부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씩 쌓이다 보면 5년 내지 10년 후에는 분명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Q 다시 재야의 변호사로 돌아오셨는데, 개업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재야 법조계의 수장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예전처럼 치열한 수임 경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후배변호사님이 운영하는 신생 법무법인에 합류하여 다른 방식으로 법조계에 봉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포부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법률가로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봉사와 헌신의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Q 변호사님은 영어에 매우 능통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를 학습하는 노하우와 함께, 영어가 큰 도움이 되었던 사례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과거 처음 변호사 개업을 했을 당시에는 송무에 치중하느라고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을 너무 좁은 시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흔 살 무렵부터 회화 중심의 실용영어를 꾸준히 공부해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어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굳이 외국어 공부 노하우라고 한다면, 매일같이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외국어 학습의 가장 큰 장점은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국내 소식이나 주관적인 경험에만 매몰되지 않고, 전 세계적 이슈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아가 다양한 해외 인사들과의 교류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지방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을 지내면서 다양한 국제 회의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 굳이 통역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영어로 소통하며 발표를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점이 IBA(International Bar Association, 세계변호사협회) 집행부를 비롯한 해외 법조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영미권 국가의 변호사님들은 남다른 친근감을 표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정부와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연계하여 세계법률가대회 등에 원로 변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국 기업이나 정부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막후에서 조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국가 경쟁력의 향상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도 변호사단체 등과 협력하여 대외적인 법률가 네트워크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일선 법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배변호사들에게 조언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와 법률가로서의 지식을 결합해 자신만의 스페셜티(specialty)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미 일선 법무 현장에서는 그렇게 활약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정 영역에서 고유한 노하우나 지식이 축적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무기가 됩니다. 모든 분야를 백화점식으로 섭렵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 대신 특화된 영역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협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정말 인상적인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우즈베키스탄의 변호사회에서 중앙아시아와 유럽, 아시아 변호사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현지 사무소에서 만난 한 러시아 변호사님은 한국외대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업력을 키우며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고, 차별화된 경력과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후배변호사님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이분을 언급하며 자신만의 특색있는 분야를 발굴해 진취적으로 나아가기를 권유 드리고 있습니다.
● 인터뷰/정리 : 왕성민 본보 편집위원